사이판 여행시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승인 당시 독점이 우려되는 노선의 공급석을 2019년의 90%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붙인 조건이 올해 인천-괌 노선에서 오히려 과당경쟁을 일으켰고, 이 여파가 사이판 노선으로도 번져서다.
2019년 대한항공과 진에어, 에어서울의 인천-괌 노선 공급석은 약 87만8,000석에 달했다. 그해 괌을 방문한 한국인수는 역대 최고치인 75만3,357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괌을 찾은 한국인수는 15만8,424명으로 2019년 동기대비 44.3%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은 올해 인천-괌 노선에 대해 하루 2회 운항에서 하루 3회로, 진에어의 경우 하루 1회에서 하루 2회로 증편했고, 늘어난 공급석만큼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자 치열한 가격 경쟁이 펼쳐졌다. 이는 결국 항공사들의 수익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제주항공은 괌 취항 13년 만에 10월27일부로 인천-괌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처럼 수익성이 낮을 게 뻔한 상황이지만 합병 승인 조건에 따라 에어서울이 울며 겨자 먹기로 10월26일부터 하루 1회 운항에 뛰어들었다.

불똥은 엉뚱하게도 사이판까지 튀었다. 사이판은 괌과 함께 경쟁 구도를 이어온 남태평양 지역의 휴양지인데 항공사들이 괌 노선에서 10~20만원대 가격 경쟁을 펼치면서 상대적으로 사이판 항공권 가격이 경쟁력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사이판 노선은 티웨이항공과 제주항공 두 항공사만 운항했지만 괌 노선에서 펼쳐지는 경쟁에 치여 운항 변동이 잦았고, 남은 하반기에도 불안정한 항공 공급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리아나관광청이 지난 8월2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사이판 노선을 하루 2회 운항하던 제주항공은 9월8일~30일까지 야간편 운항을 중단, 10월 말 동계시즌 이후로는 하루 1회만 운항할 예정이며, 티웨이항공은 8월18일부터 9월28일까지, 10월14일부터 11월22일까지, 그리고 2026년 3월15일부터 31일까지 운항을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9월~11월 중순까지 인천-사이판 노선은 추석 연휴 기간을 제외하고 제주항공이 단독 운항하게 되면서 사이판 항공권 가격은 더 치솟았고, 이는 사이판 여행 수요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9월2일 기준 스카이스캐너에서 9월17일~21일 일정으로 인천-괌 왕복 항공권을 검색한 결과 최저가는 진에어 19만1,496원, 티웨이항공 29만7,700원, 대한항공 45만9,900원 순을 나타냈다. 인천-괌 노선의 왕복 항공권 가격은 추석 연휴 기간을 제외하고 11월까지 이와 같은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데, 같은 일정으로 제주항공 인천-사이판 왕복 항공권은 제주항공 76만6,7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진에어의 인천-괌 항공권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비싼 셈이다. 이처럼 사이판 노선은 항공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며 올해 1~6월 사이판을 방문한 한국인수는 7만9,234명으로 2019년 전체 방문객수(24만1,776명)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항공사들이 괌‧사이판 노선에서 피 터지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여행사들도 녹초가 됐다. 수요 대비 공급 과잉이 이어지는 괌 노선에서는 판매 부담이 커졌고, 사이판 노선에서는 항공사들의 잦은 운항 스케줄 변동으로 안정적인 판매가 어려워져서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어떤 시장에서든 공급과 수요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승인 조건이 2025년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다”며 “유연한 시정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