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공공장소의 공유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경기도 수원의 광교호수공원에서 촬영된 러닝크루의 ‘벤치 점령’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되며 시민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는 “광교호수공원 러닝크루 무개념 벤치 점령”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에는 러닝크루로 추정되는 모임이 벤치를 짐 창고처럼 사용하는 장면이 담겼다.
사진 속 벤치는 이미 짐들로 꽉 찬 상태였다. 플라스틱 박스, 아이스박스, 음료수병, 종이컵 등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일반 시민이 앉을 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벤치 뒤에는 해당 크루의 이름으로 보이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글을 올린 A씨는 “규모 있는 러닝 동호회로 보였는데, 이런 행동이 얼마나 비매너인지 알고는 있을까”라고 지적하며 “전국에서 활동하는 러닝크루라면 기본적인 매너를 되짚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해당 게시물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특히 밤 시간 산책 중 러닝크루를 마주쳤다는 경험담들이 이어졌다. “뒤에서 여러 명이 ‘비켜요’라고 소리치며 달려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유모차를 밀던 노인이 놀라 넘어질 뻔했다”는 글도 있었다.
러닝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예절이 실종된 순간, 시민들의 인내도 한계를 넘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서울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에서는 러닝크루 관련 민원이 계속되자 이미 ‘5인 이상 러닝 자제’ 규정을 도입한 바 있다. 달리는 인원 간 2미터 거리 유지, 위반 시 퇴장 조치 등의 규칙이 적용된다. 송파구 역시 석촌호수 인근에 ‘3인 이상 달리기 자제’ 문구의 현수막을 설치했다.
러닝크루의 ‘점령’ 방식이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보다 광범위한 관리 체계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러닝크루의 존재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한 건강 증진, 사회적 유대감 형성 등 다양한 순기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공공 윤리의식 위에 세워져야 한다.
공원은 특정 단체의 사적 공간이 아니다. 운동 전후 짐을 어디에 두고, 어떤 방식으로 휴식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러닝크루 문화는 자칫 ‘이기적인 집단 행동’으로 전락할 수 있다.
누리꾼 다수는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기가 앉으면 되지 않느냐”는 상식적 비판을 던졌다. 일부는 “수다 떨기 위한 모임인지 운동을 위한 모임인지 헷갈린다”, “항상 떼로 몰려다니면 무슨 용기가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지적은 단순한 혐오나 불만이 아니다. 러닝크루 스스로가 ‘공공장소에 대한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다.
‘크루’라는 이름은 협력과 존중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의 활동이라면 ‘공동체’라는 말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러닝은 곧바로 타인과의 조우를 전제로 하는 운동이다. ‘함께 달리는’ 것이 아니라면, 왜 크루일 필요가 있을까.
지금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러너들의 매너가 러닝 문화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