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9월이 시작되면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 일대는 형형색색의 상사화가 피어나는 ‘가을의 입구’가 된다.

가을 단풍보다 한발 앞서 피는 이 꽃들은 단순한 경관을 넘어, 희귀성과 상징성으로 인해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이들을 불러모은다.
불갑사 관광지 초입의 개울가엔 유독 눈길을 끄는 노란 꽃이 있다. 국내 자생종인 진노랑상사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보호받는 이 꽃은 개화 시기가 짧고 번식도 까다로워 일반적인 야생화와는 달리 일부러 보러 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학술적 가치는 물론 생물다양성 보존 측면에서도 중요한 식물로 분류되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사진작가나 식물 애호가 사이에서도 ‘희귀 촬영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진노랑상사화의 개화가 끝나갈 즈음, 분홍빛 상사화가 뒤를 잇는다. 이후 제주상사화와 백양상사화, 마지막으로 위도상사화까지 다양한 품종이 연이어 피어난다. 각기 다른 색의 상사화들이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개화하면서 불갑사 전역이 마치 시간에 따라 물드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바뀌어간다.
특히 위도상사화는 전북 군산시 위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 식물로, 순백의 꽃잎이 절경을 완성하는 마무리 역할을 한다.
9월 말부터는 불갑사 산책로 일원이 붉은 꽃무릇으로 덮이며 절정을 맞이한다. 꽃무릇은 상사화의 일종으로, 꽃과 잎이 마주치지 않는 독특한 생태로 ‘그리움’과 ‘이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쓸쓸함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 꽃은, 불갑사의 고요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긴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붉은 길은 마치 비단을 깔아놓은 듯해, 걷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낮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감각이 펼쳐지는 시간은 해가 진 이후부터다. 조명을 활용한 야간 경관 연출은 붉은 꽃들과 고즈넉한 사찰의 실루엣을 한데 엮어, 마치 전통 수묵화 속을 걷는 듯한 인상을 준다. 관람객들은 이 특별한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며, 다시 오기 어려운 순간을 기록에 담는다.
이러한 야경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난 ‘야간 관광’ 수요를 반영한 결과로, 축제 운영 측에서도 이를 주요 콘텐츠로 강화하고 있다.

오는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흘간 진행되는 제25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는 단순한 꽃 구경을 넘어, 지역 문화와 특산품을 접할 수 있는 통합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상사화랑 머물古! 상사호랑 찍GO’라는 콘셉트 아래, 각종 체험 부스와 포토존, 먹거리 장터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지역 청년 상인과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공동 프로그램이 새롭게 기획돼, 보다 입체적인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지역의 얼굴을 보여주는 축제로 발전 중이다.
한편, 최근 몇 년간 상사화의 개화 시기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영광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상기온으로 인해 개화가 5~7일가량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단기적 관람 시기 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방문 예정자라면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