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전북 완주. 전주의 그림자에 가려 조명을 덜 받았지만, 미식가들 사이에선 오히려 그 순수함 때문에 더 각광받는 곳이다. 이곳은 강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그 점에서 완주의 식탁은 마치 시골의 정원 같다. 소박하지만 풍요롭고, 단순하지만 정성이 배어 있다.
두부의 고장, 순한 백반의 중심
완주 소양면의 화심마을은 순두부 요리의 메카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순두부백반은 흔한 두부찌개와 다르다. 콩 본연의 고소함을 살리기 위해 양념은 절제하고, 국물은 깊이 있게 낸다. 바지락과 돼지고기를 함께 넣어내는 방식은 단백질 조합에서도 균형을 맞췄다.
이른 아침 빈 속에도 부담 없이 들어가며, 해장으로도, 건강식으로도 각광받는다. 식당들이 마을 단위로 모여 있어 로컬 공동체가 형성된 것도 독특한 특징이다.

묵은지와 닭의 진심 어린 조화
묵은지닭볶음탕은 완주에서 맛봐야 할 대표 향토음식이다. 일반 닭볶음탕과의 차이는 바로 묵은지다. 살짝 삭은 김치의 산미가 닭고기의 기름기를 잡아주고, 양념과 국물은 깊이와 강도를 동시에 잡아낸다.
토종닭을 쓴 식당에선 쫄깃함이 남다르며, 감자와 함께 끓이면 국물은 더욱 걸쭉해진다. 완주의 묵은지닭볶음탕은 단순한 반주용 안주를 넘어, 가족과 나눠 먹는 따뜻한 식사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물가 따라 느긋하게, 민물매운탕
완주는 계곡과 저수지가 많아 민물 생선 요리가 발달했다. 메기, 쏘가리, 동자개 등을 시래기와 함께 푹 끓여낸 민물매운탕은 국물의 점성이 진하고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잡내를 잡는 방식도 식당마다 다르다. 시래기, 된장, 마늘, 청양고추 등 조합에 따라 국물의 성격이 달라진다. 일부 식당에선 누룽지까지 함께 내는 등, 후식까지 배려한 상차림이 돋보인다.

완주는 전국에서도 로컬푸드 운동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모악산 자락에 위치한 로컬푸드 레스토랑에서는 제철 채소와 유기농 식재료만으로 만든 한상을 내놓는다.
곡물과 발효, 소화가 편한 밥상
완주에서는 묵밥이나 보리밥, 잡곡밥 등 곡물 중심 식사가 발달했다. 소화가 잘 되는 조리법과 함께 식이섬유, 단백질, 미네랄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어 장년층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식사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된장국, 깻잎장아찌, 나물무침 등 발효와 절제의 조합은 미각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먹는 즐거움을 충분히 준다. 맛의 세기가 약한 대신, 내공이 길다.
완주의 밥상은 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물리지 않고,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그건 식재료의 힘이기도 하고, 조리하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