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충남 태안의 서쪽 끝, 해변에 발을 디디면 모래가 끝없이 이어진다.

눈앞에는 물결 대신 황금빛 언덕이 펼쳐져, 순간 이곳이 사막인지 해안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이 광활한 모래지형의 이름은 신두리 해안사구다.
태안군 소원면 신두리 해수욕장 일대에 위치한 이 사구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빙하기 이후 약 1만5천 년 전부터 시작된 퇴적과 바람의 작용으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지역은 북서 계절풍을 정면으로 받는다. 강한 바람이 바다와 내륙을 오가며 운모편암 같은 암석을 깎아낸 뒤, 파도와 함께 해안으로 운반한다. 이렇게 쌓인 모래가 오랜 세월 바람에 의해 이동하며 모래언덕이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사구, 사구 초지, 습지, 임지 등 사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태가 한곳에 존재한다.
사구는 단순한 모래더미가 아니다. 해일이나 바닷물 유입으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완충지대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해당화 군락지가 있다.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매꽃, 갯방풍 등 모래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서식한다. 일부는 국내에서 희귀종으로 분류될 만큼 보전 가치가 높다.

동물 역시 다양하다.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등 일반 해변에서는 보기 힘든 생물들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사구 내 웅덩이에서는 아무르산개구리와 금개구리 같은 양서류가 산란한다.
봄에는 해당화가 붉게 물들이고, 여름에는 모래 위 초록 식물들이 무성하다. 가을이면 바람이 만들어낸 작은 사구의 능선이 뚜렷해지고, 겨울에는 바람과 모래가 거친 풍경을 만든다. 계절마다 색과 형태가 달라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인상을 남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보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무분별한 출입은 모래언덕 붕괴나 희귀 식물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일부 구역은 출입이 제한되며, 생태 해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관람이 권장된다.

언뜻 보면 황량한 모래언덕이지만, 그 속에는 수만 년의 지질학적 역사와 수백 종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 ‘한국에도 사막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두리 해안사구는 충분히 대답이 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