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줄 알았어”… 가을 제주, 이국적 감성 가득한 여행지

다랑쉬오름 - 비짓제주

(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가을이 오면 제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 계절, 제주의 오름은 마치 다른 나라의 대자연 속으로 들어선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다랑쉬오름 - 비짓제주
다랑쉬오름 – 비짓제주

억새가 만들어내는 ‘은빛 초원’의 장관

가을의 오름을 오르면 발아래로 펼쳐진 억새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끝없이 이어진다. 햇살이 스치면 억새의 은빛이 파도처럼 번져나가고, 걷는 사람의 그림자마저 부드럽게 묻혀간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마치 몽골 초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듯한 자유로움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오름은 각각 고유의 매력을 지녔다. 사려니오름의 숲길은 깊고 차분하며, 새별오름은 능선이 완만해 억새 감상에 제격이다. 한라산 자락에 가까운 오름일수록 공기가 차분하고 하늘이 가깝게 느껴진다. 도시의 복잡한 공기에서 벗어나 오름을 오르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만이 귀를 채운다.

따라비오름 - 비짓제주
따라비오름 – 비짓제주

해 질 무렵, 제주는 색이 바뀐다

노을이 깔릴 무렵 억새는 황금빛으로 변한다. 붉게 물든 하늘과 겹쳐진 억새밭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해가 넘어가며 하늘의 색이 푸른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하는 순간, 오름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국의 황야보다도 더 장엄하다.

이때는 사진보다 눈으로 담는 것이 더 좋다. 셔터를 누르는 사이에도 색이 변하고, 빛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바람에 따라 억새의 결이 바뀌고, 사람의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 오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루의 쉼표’가 된다.

큰노꼬메오름 - 비짓제주
큰노꼬메오름 – 비짓제주

별빛 아래 다시 피어나는 오름의 밤

밤이 내리면 오름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불빛이 적은 제주는 별이 쏟아지는 듯한 밤하늘을 보여준다. 오름 정상에 앉아 올려다보면 별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고, 고요한 들판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바람은 낮보다 차갑지만, 그만큼 공기가 맑아 별빛이 더욱 선명하다.

이 시간의 제주는 소란함이 없다. 인공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자연의 숨소리뿐이다. 오름에 앉아 있으면 마치 세상의 가장 끝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고요함은 도시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