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강원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부대장은 병사의 부모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아 화제다.

“자기 전 명상 음악을 듣게 에어팟을 지급해달라”, “감기약 복용 여부를 확인해달라” 같은 요구가 실제로 전달되고 있다. 식단 변경이나 생활 환경에 대한 요구도 끊이지 않아, 일부 간부들은 “군인인지 유치원 교사인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런 민원이 간부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군은 병사 복지 강화를 추진해왔지만, 부모들의 개입이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현장 간부들은 정작 본연의 임무인 훈련·작전 지휘보다 행정 처리와 민원 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됐다.
현장 간부들의 업무는 점차 ‘지휘’보다 ‘돌봄’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으니 식단을 바꿔달라”, “잠들기 전 약 복용을 챙겨달라”는 민원이 빈번하다. 일부 중대장·소대장은 병사 부모의 요구를 수시로 응대하며 지휘 능력이 아니라 생활 편의 서비스 제공자로 전락했다고 느낀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기 저하로 직결된다. 본연의 임무인 전투 준비보다 민원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현실은 간부들의 직업적 자긍심을 갉아먹고 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정년 전에 조기 전역을 신청한 간부는 2천869명으로, 2021년 같은 기간(1천351명)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 중 2천460명은 실제 부대 운영을 맡는 위관 장교와 부사관이었다. 핵심 계층의 이탈은 곧바로 지휘 체계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국방연구원이 지난해 전역 예정 간부 417명을 조사한 결과, ‘낮은 보상’(22.5%)과 ‘행정 위주 복무로 인한 보람 상실’(20.1%)이 전역 사유 상위를 차지했다. 최근 병사 급여 인상으로 초급 간부와 병장 간 실수령액 차이가 크게 줄면서, 간부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경기 북부에서 근무하는 한 중위는 “민원 대응에 매달리다 보니 직업적 회의감이 든다”며 전직 준비를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군은 단순한 급여 문제가 아닌 근무 환경 전반의 구조적 불균형을 직면하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초급 간부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중견 간부의 직업 안정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부상 장병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부를 땐 국가의 자녀, 다치면 나 몰라라’는 한탄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