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초가을이 물러가고 본격적인 단풍철이 다가오면서 전국 곳곳이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 담양에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별한 가을을 보여주는 숲이 있다. 국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 숲은 단풍보다도 더 깊은 황금빛 정취로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담양 관방제림은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는 산림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와 생태, 문화가 함께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관방제림의 역사는 조선 인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648년, 잦은 홍수 피해에 시달리던 담양에 부임한 성이성 부사는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백성을 보호하고자 했다. 그 선택이 370여 년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숲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재난을 막기 위한 실용적 수단이었지만, 수백 년 동안 숲은 담양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성장했다. 사람의 손길이 시작이었으나 자연의 힘이 완성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도 크다.
많은 이들이 가을 산행하면 붉게 물든 단풍을 떠올리지만, 관방제림은 다르다. 이곳의 고목들은 푸조나무와 팽나무가 주를 이루는데, 가을이 되면 불타는 붉은빛이 아니라 은은하고 차분한 황금빛과 고동색으로 변한다.
길게 이어진 2km 숲길을 걷다 보면 양옆으로 뻗은 거대한 나무들이 만든 황금빛 터널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발밑에는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푹신한 길이 펼쳐지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흘러들어 부드러운 빛의 장막을 드리운다.

담양에는 메타세쿼이아길처럼 서양적인 풍경을 연상케 하는 길도 있지만, 관방제림은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다. 외래종 대신 토착 수종이 수백 년을 버티며 만들어낸 풍경이기에, 이곳에서는 한국적인 가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입장료와 주차료가 없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길 건너편에는 죽녹원이 자리해 대나무 숲의 푸른 터널과 황금빛 숲길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담양을 찾는 이들이 한나절 산책만으로도 사계절의 숲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관방제림은 자연경관만이 아니라, 담양이라는 도시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