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샤브, 물회, 도다리쑥국… 사천 바다는 미쳤다

(여행지도 용태영 기자) 경남 사천. 여느 해안 도시처럼 바다가 있는 곳이지만, 이 도시는 단순한 어항이 아니다.


사천 실비 - 사천시
사천 실비 – 사천시


남해안의 해산물이 사천에 이르러 유독 깊은 풍미를 띠는 데에는, 기후와 해류, 그리고 사람들의 손맛이 있다. 사천의 바다는 요리로 말한다.


봄엔 도다리, 여름엔 갯장어


봄바람이 불면 사천 식도락가들은 도다리쑥국을 찾는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해쑥과 저지방 고단백 도다리가 만난 이 국물요리는, 피로 회복과 몸보신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단순한 조합 같지만, 신선도가 생명인 음식이다.


여름이면 하모로 불리는 갯장어 샤브샤브가 별미다. 칼집을 정교하게 낸 갯장어를 진한 뼈육수에 살짝 데쳐 먹으면,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사천의 하모는 특히 뼈를 곰국처럼 고아 만든 육수 덕에 맛의 깊이가 남다르다.


갯장어 샤브샤브 - 사천시
갯장어 샤브샤브 – 사천시


겨울바다는 또 다른 진미의 시간


사천의 겨울은 물메기탕이 주인이다. 미끈한 외형과는 다르게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며,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식당마다 해장객들로 북적인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이 적어 담백하게 즐기기 좋다.


이 시기 또 하나의 주역은 새조개다. 새의 부리를 닮은 외형, 혀에 닿는 쫄깃함, 몇 초 데쳐 먹는 샤브샤브식 조리법은 미식가들 사이에서 사천을 향하게 만드는 이유다. 겨울철 한정이라는 계절성도 희소가치를 더한다.


물메기탕 - 사천시
물메기탕 – 사천시


날이 더우면 물회 한 그릇


사천 물회는 여름철 생선요리의 정수다. 얇게 채 썬 생선살에 해삼과 각종 채소, 얼음을 더한 초장 베이스의 국물은 단순히 시원한 맛을 넘어서 감칠맛이 응축된 한끼가 된다.


특히 해삼을 잘게 썰어 넣는 것이 사천식 물회의 특징인데, 이는 식감과 향의 층을 더해준다. 국물까지 마시게 되는 이유다.


물회 - 사천시
물회 – 사천시


장어구이, 냉면, 그리고 실비 한상


사천에는 장어구이 전문 식당도 많다. 소금구이로 조리한 장어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실안동 일대는 장어구이로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또한 사천식 냉면은 고기 육수에 굵은 면발을 쓰며, 육전이나 고기고명을 곁들이는 방식이다. 흔히 아는 평양냉면, 함흥냉면과는 다른 스타일로 지방 고유의 입맛을 반영한다.


냉면 - 사천시
냉면 – 사천시


이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맛보는 방식이 바로 ‘실비’다. 안주를 고르지 않아도 한상 가득 음식이 차려지는 방식으로, 바다를 통째로 담아내는 사천의 식도락 문화를 대표한다.


사천의 음식은 재료가 반이고, 신선도가 반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주인공을 그대로 식탁에 올리되,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조리한다. 이 도시가 해산물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다 때문이 아니라, 바다를 다루는 법 때문이다.


회 한 점, 장어 한 토막, 국물 한 숟가락.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시간을 먹는 일이 된다. 사천의 밥상은 입맛보다 더 깊은 무엇을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