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용태영 기자)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는 빠른 흐름을 거부하고 느림의 미학을 선택한 섬이다. 이곳은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되며 세상과 다른 호흡을 보여준다.

이 섬의 중심에는 한국 최대 규모의 단일 염전이자, CNN이 ‘한국에서 꼭 가야 할 아름다운 곳 TOP 10’에 선정한 태평염전이 있다. 자연과 시간이 합작한 풍경은 잠시 멈춤을 원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쉼을 선사한다.
태평염전은 단순한 소금밭이 아니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 정착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곳은 삶의 터전이자 국가 재건의 흔적을 품고 있다. 약 3km에 걸쳐 줄지어 선 67동의 창고와 염전은 거대한 산업 시설이자 하나의 문화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에는 등록문화재 제360호로 등재되며 역사적 의미가 공인됐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청정 해역의 바닷물을 원료로 삼아 자연 그대로의 맛을 전하며, 지금도 국내 최대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태평염전 입구에는 염전 습지를 활용한 염생식물원이 자리한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로, 함초와 칠면초, 해홍나물 등 약 7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붉게 물든 칠면초 군락지와 하얗게 번지는 삘기꽃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220m 길이의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발아래로 펼쳐진 갯벌과 염생식물이 만들어내는 생태의 복잡한 조화가 생생히 드러난다. 이 공간은 단순한 식물 관찰을 넘어 람사르 습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후보지라는 위상을 갖춘 생태 보고다.
염전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소금박물관을 들러야 한다. 실제 염전을 개조해 만든 이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소금 전문 전시 공간으로, 단순히 소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염부들이 쓰던 도구, 천일염의 형성과정, 한국 소금 산업의 변천사를 체계적으로 담아내며, 조미료를 넘어 생명 유지의 근간으로서 소금의 의미를 일깨운다. 입장료는 3천 원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교육적 체험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태평염전과 증도의 매력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다. 슬로시티라는 정체성과 더불어, 이곳은 인간의 노동, 자연 생태, 그리고 근대 산업의 흔적이 한데 어우러진 학습의 장이 된다.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고, 성인들에게는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느린 시간 속에서 소금이 빚어내는 빛과 바람, 그리고 땀의 가치를 마주한다는 점에서 태평염전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