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멍때리기 대회…’멍상’에 도전하는 사람들

2025-08-09 11:41:08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제주민속촌에서 열린 ‘놀멍쉬멍상 대회’/뉴스1

“오늘은 말이 없는 날, 고요함을 맞이해주십시오”

9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민속촌에 적막감이 흘렀다.

모처럼 내린 비로 뜨거운 폭염이 다소 가시긴 했지만 제주 특유의 높은 습도 탓에 잠시만 앉아있어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처럼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은 한여름 더위 속에서 30여명의 사람이 민속촌 전통 가옥에 모여 앉았다.

이들은 명상 다례 대회 ‘놀멍쉬멍상(놀면서 쉬면서라는 뜻의 제주어와 명상의 합성어)’ 대회 참가자들이다.

이 행사는 멍때리기를 제주식 웰니스 체험으로 재해석한 대회다.

대회가 시작되는 순간, 행사를 진행하는 진행자를 제외하고는 쌕쌕거리는 숨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가끔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와 바람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참가자들은 명상과 차 따르기, 초현실 시 쓰기, 무표정 대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차례로 소화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멍상의 경지’에 도전했다.

제주민속촌에서 열린 ‘놀멍쉬멍상 대회’/뉴스1

고요함을 가장 잘 표현한 참가자에게는 ‘장원급제상’, ‘무위의 손상’, ‘멍상의 존재상’이 수여된다.

반면 고요함을 깬 참가자를 대상으로는 곤장을 맞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서울에서 온 30대 고모씨는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던 중 재미있을 것 같아 참가하게 됐다”며 “제주의 고요함과 힐링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같다”고 했다.

30대 이주민 김이서씨는 “명상을 늘 해보고 싶었는데 멍때리기 대회를 한다고 해서 젊은 감각이기도 하고 진입 장벽도 낮은 것 같아 도전해 봤다”며 “제주 하면 떠오르는 고즈넉함이 명상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제주민속촌은 “이번 대회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진정한 휴식의 철학을 나누는 문화적 장치”라며 “앞으로도 전통과 현대의 감성을 연결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지속해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소위 ‘멍때리기’ 대회는 최근 몇 년 사이 힐링의 섬 제주에서 이색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서귀포시도 매년 6월쯤 서귀포치유의 숲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40팀에서 60팀으로 참가 규모가 늘어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대회는 90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장 낮고 안정적인 심박수를 기록한 사람이 우승하는 대회다.

해당 대회는 2021년 미국 유력 일간 워싱턴 포스트에서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