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서울의 가을은 차가운 바람이 빌딩 숲을 스치고, 회색 도시는 어느새 색을 입는다. 그 첫 장면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덕수궁 돌담길이다.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역사와 낭만,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한데 얽혀 있는 공간이다. 매년 10월 말, 수십 그루의 은행나무가 일제히 황금빛으로 물들며 서울의 가을 개막을 알린다.
세종대로를 따라 펼쳐진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가을길 중 하나다. 은행잎이 흩날릴 때면 길 위는 ‘황금 카펫’으로 덮이고, 그 위를 걷는 발걸음마다 가을이 한 겹씩 묻어난다. 특히 점심시간에 맞춰 시행되는 ‘차 없는 거리’ 구간(11시 30분~13시 30분)은 이곳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길의 끝에는 덕수궁이 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풍경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담장 밖이 노랗고 밝은 가을이라면, 안쪽은 붉고 묵직한 가을이다. 이 대비는 덕수궁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궁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고목 사이로 스며든 단풍의 붉은 결이다. 대한제국 시절의 흔적을 간직한 궁궐은 가을빛을 만나 한층 더 깊은 정취를 드러낸다. 왕의 일상이 지나갔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사색의 무대가 된다.
덕수궁의 단풍 명소 중 으뜸은 단연 석조전이다. 서양식 고전주의 건축물인 석조전 앞마당에는 붉은 단풍이 물결치듯 펼쳐진다. 회색빛 대리석 건물과 붉은 나무의 색 대비는 보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단풍의 절정은 예년 기준으로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단풍이 빠르게 떨어지므로, 일정이 허락한다면 10월 마지막 주가 가장 좋다. 덕수궁은 월요일 휴궁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으로 부담이 적다. 다만, 궁궐 내에는 주차가 불가하므로 인근 시청 서소문청사 주차장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석조전 내부 관람을 원한다면 사전 예약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