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 평 억새 천국을 케이블카 타고 편하게 오른다” 단풍보다 강렬한 밀양 여행지

재약산 사자평 억새평원 / 사진=밀양시

재약산 사자평 억새평원 / 사진=밀양시


연말이 다가올수록 흔히들 “다사다난했다”라고 마라지만, 올해만큼 그 말이 절실한 해도 드물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 이어진 다양한 사건과 피로감. 모두가 숨을 고르고 싶어질 때, 밀양의 사자평은 그런 마음을 위한 가장 조용한 위로가 된다.


 


17만 평 억새바다 / 사진=밀양시

17만 평 억새바다 / 사진=밀양시


억새의 바다 위로 걷다


밀양의 주산이자 영남알프스의 한 축, 재약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사자평 억새평원. 17만 평이 넘는 드넓은 평원은 가을이면 은빛 파도가 넘실대며, ‘국내 최대 억새군락지’라는 이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해발 800m 고원 위에 자리한 이곳은 한때 목장이 번성했던 땅이자, 신라 화랑들이 수련하고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하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표충사에서 시작하는 대표 등산 코스는 숲 그늘이 짙고, 흑룡폭포와 층층폭포가 연이어 등장한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멀어질 때쯤 시야가 확 트이며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그 순간, 눈앞을 덮는 은빛 물결에 발걸음이 멈춘다. 가을의 쓸쓸함보다는 오히려 화려함의 절정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사자평 / 사진=밀양시

사자평 / 사진=밀양시


바람이 만드는, 억새의 바다


귀를 기울이면 억새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들린다. ‘사각, 사각’  어느새 산이 아닌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바람은 파도가 되고, 억새는 포말이 된다.그 한가운데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가슴 끝까지 차오르는 신선한 공기가 온몸의 피로를 덜어준다.


이곳에서는 가을을 ‘본다’기보다 ‘마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모든 오감이 계절의 결을 따라 흐르는 곳, 그게 바로 사자평이다.


 


얼음골 케이블카 / 사진=밀양시

얼음골 케이블카 / 사진=밀양시


케이블카로 만나는 또 다른 가을


산길이 부담스럽다면,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보자. 1.8km에 달하는 긴 선로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단숨에 1,020m 상부 승강장까지 닿는다.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280m 길이의 ‘하늘사랑길’ 데크로드, 그 끝에는 사자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시작해 한두 시간 정도 완만한 길을 걸으면 억새평원으로 닿는다.걷는 내내 이어지는 억새 군락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흘러, 마치 동화 속 풍경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사자평의 진짜 매력은 풍경만이 아니다. 이곳은 국내 최대의 고원습지로, 약 58만㎡ 규모에 달한다.


산 정상 부근의 평평한 땅에 맑은 물이 모여 흐르며, 그 속에는 희귀 식물과 멸종위기종인 삵, 하늘다람쥐 등이 살아간다. 


 


단풍과 계곡의 풍경도 놓칠 수 없다 / 사진=밀양시

단풍과 계곡의 풍경도 놓칠 수 없다 / 사진=밀양시


2006년, 환경부는 이곳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밀양시는 오랜 시간 억새군락과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실이 지금의 사자평을 만든 것이다. 한 번의 여행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풍경,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다시 찾는 명소’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