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왼손에는 동전을 쥐고, 오른쪽 어깨 너머로 살짝 던지며 소원을 비는 순간. “언젠가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기를.” 누구나 그렇게 말하며 작은 희망을 물결 속에 맡긴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수천 명의 여행자들이 던지는 그 동전들, 과연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물속 어딘가에 쌓여 빛을 잃어갈 것 같지만, 사실 그 동전들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기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지금부터 그 놀라운 여정을 따라가 보자.
물속의 동전, 비밀스러운 여정

트레비 분수에는 하루 평균 약 3,000유로, 연간 약 150만 유로(한화 약 22억 원)에 달하는 동전이 던져진다. 로마 시는 이 돈을 단순 관광 수익으로 두지 않는다.
매주 새벽, 로마 시 공공기관 ACEA의 직원들이 물속의 동전을 모으는 특별한 청소 작업을 진행한다.빗자루와 흡입기, 장대형 포크를 이용해 바닥의 동전을 수거한 뒤, 이들은 동전을 말리고 세척한 다음 분류해 로마시로 넘긴다.
이 작업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도 “도시의 비밀스러운 아침 의식”으로 불린다. 한때는 일부 사람들이 자석봉으로 동전을 훔쳐가는 일이 있었지만, 현재는 로마 시 조례에 따라 모든 동전은 자선단체에 기부해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어 있다.
소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수에서 모인 동전은 로마 가톨릭 자선단체 카리타스(Caritas)로 전달된다. 이 단체는 로마 내 노숙자 쉼터, 무료 급식소,그리고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슈퍼마켓(Solidarity Emporium)’을 운영하며, 트레비 분수의 동전은 이 모든 사업의 든든한 재원이 된다.
2023년 기준, 트레비 분수에서 수거된 금액은 약 150만 유로. 이는 카리타스 연간 예산의 15%를 차지할 만큼 큰 규모다. 즉, 전 세계 여행자들의 소원이 모여 로마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제로 ‘희망의 식탁’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한 동전의 낙하가 만들어낸 인연. 그것은 수천 명의 손길이 모여 완성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선 행위다. 그 소원은 어쩌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 작은 선행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