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이 길을 따라 쌓이는 ‘수만 개의 소원’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비밀

붉은 토리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신비로운 길, 교토의 후시미이나리 신사.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앙증맞은 여우 모양의 나무 소원지에 간절한 염원을 담아 걸어두었을 겁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 소원들이 신사의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죠.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수많은 소원지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거지?”


하루에도 수백 장씩 쌓이는 이 소원지들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을 터. 이 작은 소원들이 모여 신사와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숨겨진 순환의 고리가 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늘은 여러분이 정성껏 적어둔 소원지가 신성한 의식을 거쳐 어떻게 신사의 신앙과 지역 경제의 일부로 ‘돌아오는지’, 그 흥미로운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에마가 쌓이는 이유와 방식


다양한 종류의 에마(소원지) / 사진=pexels@Mat Kedzia

다양한 종류의 에마(소원지) / 사진=pexels@Mat Kedzia


교토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길을 오르면, 붉은 토리이 문 사이사이에 수많은 *에마가 걸려 있습니다. 이 에마는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올리는 것으로, 신에게 기도와 바람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죠.


보통 여우 모양이나 토리이 문 모양으로 특색 있게 디자인된 것도 있어, 기존의 직사각형 목판과 차별됐다는 점입니다. 신사를 방문한 사람들은 표 매대에서 에마를 구매하고, 펜으로 소원을 적은 뒤 지정된 걸이 또는 랙(rack)에 걸어 두는 식인데요.


이렇게 걸려 있는 에마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이지만, 영구히 남는 것은 아닙니다.


*에마는 소원지를 뜻함


 


옛 것을 태우고 새 소원을 맞이하다


옛 것을 태우고 새 소원을 맞이 / 사진=pexels@Mat Kedzia

옛 것을 태우고 새 소원을 맞이 / 사진=pexels@Mat Kedzia


모든 에마는 무한정 걸려 있지 않습니다. 후시미이나리를 비롯한 많은 신사에서는 매해 또는 정기 의식 시에 소각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폐기하는 게 아니라, 소원이 신에게 전달되고, 남은 것은 정화되는 상징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이 소각 의식은 사람들이 쓴 소원을 하늘로 올리는 행위로 여겨지며, 새로운 에마가 걸릴 공간을 마련하는 의미도 있답니다.


 


토리이 기부와 신사의 유지


토리이 기부와 신사의 유지 / 사진=pexels@Satoshi Hirayama

토리이 기부와 신사의 유지 / 사진=pexels@Satoshi Hirayama


후시미이나리에서는 토리이 문 하나하나는 개인, 가족, 기업이 기부해 세운 것입니다. 토리이 문 뒷면에는 기부자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고, 이 문들이 모여 신사의 경관과 유지 비용을 지원하죠.


이 기부 문화는 신사의 기반 인프라를 유지하는 경제 축이기도 합니다. 즉, 관광객이 에마를 구입하여 기부하는 소액의 비용과 기업 등이 토리이를 기부하는 고액의 자금 모두 신사의 유지 및 운영 비용으로 환원되며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다층적인 순환 체계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 순환 체계는 단지 신사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사에서 판매하는 에마와 기부되는 토리이 문은 상당수 지역 내 전문 목공소와 장인들에게 제작을 의뢰합니다.


이는 관광객이 지불한 돈이 지역 경제의 뿌리인 전통 산업과 장인의 수입으로 직결되게 하죠. 관광객의 작은 소망이 지역 사회의 명맥을 잇는 든든한 힘이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