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용태영 기자) 여름밤의 공기가 낮보다 달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제주는 그 밤을, 예술과 이야기 그리고 상상력으로 채워 한층 깊고 낯선 세계로 이끈다.

제주 비짓에 따르면 이번 시즌은 제주 전역의 야간 명소를 중심으로 7월부터 8월까지 집중 운영되며, 실내·야외를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콘텐츠가 준비돼 있다. 일부 장소는 9월까지 연장된다.
빛과 사랑의 시詩, 샤갈의 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제주도립미술관이다. 올해 여름은 세계적 화가 마르크 샤갈의 특별전이 열리는 이곳에서 감성 충만한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래픽 아트의 거장’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전시는 샤갈의 판화와 드로잉 295점이 테마별로 전시된다.
특히 ‘다프니스와 클로에’ 시리즈 전체를 국내 최초로 공개하며, 몽환적 색채와 순수한 감성이 어우러진 샤갈의 세계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디어아트로 재해석된 스테인드글라스와 판화 체험 코너는 어린이와 동반 관람객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신화 속 어둠을 걷다, 루미버스의 유혹
밤이 되면 제주민속촌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빛의 섬 루미버스’라는 이름으로 변신한 이 공간은 제주 신화를 테마로 한 야간 콘텐츠의 집약체다. 설문대할망, 도채비, 천휘령 등 고유 캐릭터가 등장하며 7개의 테마존에서 몰입형 체험을 제공한다.
특히 배우들이 직접 등장해 악령을 물리치는 공연을 펼치는 여섯 번째 구역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잊지 못할 몰입을 선사한다. 퍼레이드 카나 도슨트 해설과 함께라면 더욱 깊은 감상을 즐길 수 있다. 관람 후 굿즈를 구입할 수 있는 기념품샵까지 테마파크의 면모를 완성한다.

담력 테스트의 밤, 고스트타운
이색 체험을 찾는 이들에게는 고스트타운이 제격이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이 테마파크는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줄 강력한 호러 콘텐츠로 꾸며져 있다. 좀비 슈팅 게임 ‘데드프리즌’부터 최고 난이도 공포체험 ‘고스트하우스’까지,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단, 일부 콘텐츠는 임산부나 심혈관 질환자에겐 제한되며, 야간 방문 시 난이도가 더욱 높아진다. 스릴을 즐기는 관광객에게는 제주 야간의 새로운 얼굴이 될 수 있다.

밤에 걷는 낭만, 용연구름다리의 풍경
한편 조용한 산책을 원하는 이들에겐 용연구름다리가 적절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위치한 이 다리는 용연 계곡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으며, 저녁 무렵부터 몽환적인 조명 아래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출렁이는 다리와 비춰지는 호수, 바람 소리 속에서의 산책은 제주라는 공간의 또 다른 얼굴을 느끼게 한다. 인근 용두암까지 이어지는 산책 코스도 인기다. 휴식과 풍경, 감성이 조화된 이곳은 연인뿐 아니라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기존의 제주 여행이 해변과 카페, 오름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밤이 핵심이 되고 있다. ‘섬夜(섬야) 시즌’은 단순한 개장 시간 연장이 아닌 콘텐츠의 질적 확장을 보여준다. 무더위를 피하는 동시에 예술과 신화를 체험하고, 자연과 공포 속 감정을 자극하는 구성은 기존 관광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상업성과 과도한 볼거리 중심 구성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운영 방향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특히 콘텐츠 간 난이도와 체류 시간,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더해지면 보다 안정적인 야간 관광 모델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