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경북 안동.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릴 만큼 유교 전통이 깊게 뿌리내린 도시다. 그리고 이 도시는 그 철학을 그대로 음식에 담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격식이 있으며, 구성마다 맥락이 있다. 안동의 밥상은 그 자체로 시대와 정신을 이야기한다.
보관과 발상의 조화, 간고등어
내륙지방에서 생선을 어떻게 신선하게 먹을 수 있을까. 안동의 해답은 ‘간을 해서 보관한다’는 데 있었다. 간고등어는 말 그대로 소금간을 해서 절이고 건조한 고등어로, 냉장 보관 기술이 없던 시절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이 고등어는 겉은 짭짤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촉촉해, 단순한 생선구이와는 다른 깊이가 있다. 간고등어 정식은 지금도 안동 식당에서 널리 판매되며, 고등어 한 토막에 밥 한 그릇을 비우는 일이 낯설지 않다.

제사상에서 일상으로, 헛제사밥
안동만의 독특한 음식 중 하나는 ‘헛제사밥’이다. 이름처럼 실제 제사가 아닌데도 제사상처럼 차려낸 밥상이라는 뜻이다. 예전엔 평상시엔 제사 음식을 먹지 못했기에, 이를 흉내 내어 비빔밥 형태로 즐기던 것이 유래다.
각종 나물과 고기류, 지짐이와 육회, 전 등 제사 음식의 구성이 반영된 이 밥상은 지금도 안동 지역 식당에서 하나의 정식 코스로 제공된다. 간단한 한 끼가 아닌, 전통을 맛보는 경험이 되는 셈이다.

찜닭 그 이상의 찜닭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 안동찜닭 역시 이 도시의 정체성을 품고 있다. 단순한 닭 요리가 아니라, 닭과 채소, 당면, 간장 베이스 양념의 조화를 통해 단맛과 짠맛, 감칠맛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다만 관광지에선 과하게 달거나 맵게 조리되는 경우가 많아, 원조 찜닭의 맛을 느끼려면 현지의 오래된 찜닭 골목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실제로 구시장 인근은 찜닭 거리로 형성돼 있어 비교적 전통에 가까운 맛을 즐길 수 있다.

국시, 잉어찜, 그리고 막창
건진국수로 불리는 안동국시는 장국에 삶아낸 면을 말아 먹는 담백한 국수다. 겨울에는 제물국수라고 불리는 누름국수가 대체 역할을 한다. 두 국수 모두 기름지지 않고, 맑은 국물로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안동잉어찜은 비린내 없이 고기 본연의 식감을 살린 음식이며, 막창골목에서 즐기는 안동막창은 쫄깃한 식감과 고소함으로 지역민들에게도 인기다. 안동의 미식은 고급스러움보다는 전통의 단단함을 바탕으로 서민적이되 철학적이다.

안동 음식의 맛은 절제다. 기름기보다 국물, 자극보다 은은함을 중시한다. 이는 유교의 기본 정신과 맞닿아 있다. 음식은 몸을 맑게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해야 한다는 철학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다.
이 도시의 밥상은 그저 맛있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먹는가’를 묻게 만든다. 전통이 맛이 되고, 그 맛이 다시 문화를 만들어낸다. 안동에서는 밥 한 끼가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