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제주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배를 타고 1시간 거리에 떠 있는 외딴 섬 추자도.

이름조차 낯선 이 작은 섬에 ‘한국의 지중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풍경의 절벽 트레킹 코스가 숨어 있다. 좁디좁은 해안 능선을 따라 펼쳐진 이 길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선 감각의 모험을 선사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에 위치한 ‘나바론하늘길’은 상추자도의 큰산 정상에서 독산까지 이어지는 절벽 능선 길이다. 이 코스는 제주 올레길 18-1코스의 일부이기도 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구간으로 손꼽힌다.
하늘과 바다 사이, 걷는 것만으로도 전율
이 길이 ‘하늘길’이라 불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폭 1m 남짓의 절벽 위에 난 길은 양옆으로 해수면과 절벽이 동시에 펼쳐지며, 오직 걷는 이의 균형감각만을 의지해야 한다. 곳곳은 안전난간조차 없어 ‘풍경 감상’보다는 ‘자신과의 대면’이 더 절실한 순간이 찾아온다.
또한, “나바론”이라는 별칭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나바론 요새(The Guns of Navarone)’ 속 기암절벽 장면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점에서 실제로 이 별칭이 붙었다. 길을 걷다 보면, 마치 고전 영화의 비장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관광보다 체험, 감상보다 경외의 길
이 길의 진짜 매력은 ‘아름다움’이 아닌 ‘긴장감’에 있다. 트레킹 시작점인 큰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섬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지만, 본격적인 코스에 들어서면 그 여유는 이내 사라진다. 길의 폭이 좁아지는 순간부터는 어느 하나 방심할 수 없고, 스치는 바닷바람조차 쉽게 긴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길은 날씨가 중요하다. 특히 해풍이 강한 날에는 출입이 통제되며, 탐방객 스스로도 무리한 진입은 삼가야 한다. 또, 코스 중간에는 쉼터나 편의시설이 없기 때문에 출발 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낚시꾼의 섬에서 모두의 섬으로
과거 추자도는 벵에돔, 돌돔 등 고급 어종이 많이 잡히는 낚시터로 유명했다. 전국의 강태공들이 몰려드는 곳이었고, 그 외엔 외지인들의 발길이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추자올레’가 열리며 섬은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입었다.
섬을 잇는 다양한 올레길은 관광객, 백패커, 사진 애호가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고, 그 중심에 나바론하늘길이 있다. 태고의 자연과 어촌의 일상, 절벽의 스릴이 공존하는 이 섬은 이제 ‘모두의 섬’으로 확장되고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반드시 기억될 길
나바론하늘길은 화려한 상업시설도, 인스타 감성의 카페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자연이 만든 길과 그 위를 걷는 자신의 발걸음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이 길에서, 가장 많은 것을 느꼈다”고.
특히 일상에서 벗어나 강렬한 감각의 전환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 절벽 위의 길은 단순한 트레킹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혼자서도 좋고, 조용한 동행과 함께해도 좋다. 단, 준비는 철저히, 탐방은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자연이 허락해야만 열리는 길
나바론하늘길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씨월드고속훼리(퀸스타2호)’ 운항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배는 물론, 트레킹 코스 자체도 닫히기 때문이다. 길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자연 앞에서는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어쩌면 이곳의 진짜 매력은 그 불확실함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늘 열려 있지 않기에, 더 간절히 다가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