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경기도 양평의 깊은 골짜기 ‘메덩골’에 2025년 가을 새로운 정원이 문을 열었다. 약 6만 평 규모라는 압도적인 크기와 함께, 성인 기준 5만 원이라는 국내 정원·수목원 역사상 가장 높은 입장료를 내세우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많은 이들이 화려한 식물이나 희귀종을 기대했지만, 이 정원은 그런 관습적 틀과는 거리가 멀다. 메덩골정원은 철학과 역사, 그리고 한국적 미학을 토대로 한 ‘사유의 공간’에 더 가깝다.
메덩골정원이 강조하는 가치는 단순한 경관 감상이 아니다. 과거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메꽃 뿌리를 캐어 생명을 이어갔던 땅의 기억, 그리고 니체가 말한 ‘운명애’와 ‘초인’의 정신을 함께 품고 있다. 절망을 넘어선 삶의 태도는 정원의 설계 전반에 녹아 있으며, 꽃보다 땅의 이야기에 무게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화려함 대신 척박한 땅이 품은 서사를 마주한다. 돌담, 밭작물, 고목 같은 일상적 풍경이 철학적 성찰의 장치로 바뀌는 순간, 정원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선 순례지가 된다.

메덩골정원의 완성에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건축가 승효상, 조경가 이재연, 석공 이시희 등 한국 건축·조경계의 거장들이 합류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정원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일본과 중국의 흔적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롯이 한국인의 미와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절제와 여백의 공간을 설계했고, 이재연은 100여 년간 단절된 한국 정원의 맥을 새롭게 복원했다. 돌과 흙, 나무가 가진 본연의 힘을 살린 이시희의 손길은 그 위에 영속성을 더했다.
정원의 중심부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첫째는 민초들의 삶이다. 돌담길과 텃밭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는 선비들의 풍류다. 자연 속에서 학문과 예술을 즐기던 정신세계가 정원 곳곳에 묻어난다. 마지막은 한국인의 정신이다. 벼락 맞은 서낭당 고목처럼 시련을 넘어온 역사의 흔적이 상징적으로 배치됐다.

이처럼 메덩골정원은 관상용 식물보다는 인간의 삶과 정신을 담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걷는 것’ 자체가 곧 ‘읽는 것’이 되는 독특한 구조다.
입장료만큼이나 이곳은 관람 방식에도 차별점을 둔다. 소형 가방 외에는 소지품 반입을 제한하며, 음식물·삼각대·드론 사용을 엄격히 금지한다. 이는 방문객이 외부 자극 없이 오롯이 사유에 몰입하도록 돕기 위한 장치다.
또한 정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 해설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설명 없이 본다면 단순한 돌담과 밭에 불과하지만, 해설을 곁들이면 그것은 철학과 역사의 텍스트로 변한다.
높은 입장료와 불편한 규칙은 일부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곳은 오히려 ‘선택받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책 한 권을 읽듯 정원을 읽고, 반나절 동안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