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용태영 기자) 가을이 깊어갈수록 한 수목원이 새로운 얼굴로 변신한다. 한순간은 유럽 궁정의 정원에 서 있는 듯하다가, 이내 고즈넉한 한국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은 바로 벽초지문화수목원이다. 1997년 작은 연못과 풀밭에서 출발해, 2005년 정식 개원한 후 현재는 약 12만㎡ 규모의 공간에 800여 종의 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산림청에 등록된 사립 수목원으로 관리되고 있어 관람객은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유럽풍 정원과 한국 정원의 반전 매력
벽초지문화수목원의 가장 큰 특징은 ‘대비’다. 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공간을 지나면, 말리성 문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능수버들이 드리운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국적인 정서 그 자체다.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한 걸음에 나라가 바뀌는 듯하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영화 《아가씨》, 드라마 《빈센조》, 《호텔 델루나》 등 다수의 작품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았다. 단순한 식물 전시 공간이 아닌,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연출된 무대’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다.

가을 국화 축제, 100만 송이의 향연
특히 올해 가을, 벽초지문화수목원은 가장 화려한 계절을 맞는다. 2025년 9월 26일부터 11월 16일까지 진행되는 국화 축제는 약 100만 송이의 국화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선보인다. 흰색, 노란색, 보라색이 어우러져 수목원 전역을 물들이며, 가을 단풍과 겹쳐지는 시기에 방문하면 더욱 극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10월 기준으로 오전 9시에 개장해 오후 6시에 문을 닫으며, 입장 마감은 오후 5시다. 입장료는 성인 10,500원, 청소년과 경로는 8,500원이며, 유아(36개월 미만)는 무료다. 무료 주차가 가능해 자가용 방문객의 편의성도 높다.

추천 관람 코스와 체류 팁
벽초지문화수목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1시간 반에서 2시간은 필요하다. 추천 코스는 여왕의 정원에서 시작해 무심교를 건너 파련정과 연화원을 둘러보는 약 100분 코스다. 이 동선을 따라가면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풍경 전환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주변의 마장호수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곳이라면, 벽초지는 인위적으로 설계된 ‘문화적 풍경’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두 곳을 연계 방문하면 대비적 경험이 배가된다.
벽초지문화수목원의 가치는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에 있지 않다. 동서양 정원의 철학을 한곳에 담아내면서도, 수십 년간 꾸준히 관리와 보전을 이어온 노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 대중문화 속에 자주 등장하며 ‘현실 속 세트장’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가을의 절정에 서 있는 지금, 국화와 단풍이 만들어내는 이곳의 풍경은 잠시 시간을 멈추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파주 벽초지문화수목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자, 놓치면 아쉬울 계절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