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유시내 기자) 경남 거제의 바닷가 절벽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석축은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한국 속 유럽 고성’으로 불리는 매미성이 바로 그곳이다.

거제시는 2025년 7월, 매미성에 야간 경관조명을 공식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낮에는 이국적인 풍광으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밤마다 황금빛으로 물든 성벽이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이 성의 시작은 2003년 9월 발생한 초대형 태풍 ‘매미’였다. 당시 최대순간풍속 초속 60m에 달하는 강풍이 남해안을 덮쳤고, 설립자 백순삼 씨의 생활 터전은 한순간에 쓸려갔다. 평생의 꿈을 잃은 그는 무너진 둑의 돌을 다시 쌓으며 삶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했다.
설계도도 없고 도움도 없었다. 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며, 손수 성벽을 올린 작업은 방벽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성채가 되었다. 그 과정은 어느덧 20년에 이르렀다.

매미성은 완공된 유적이 아니다. 지금도 백순삼 씨는 틈틈이 돌을 옮기며 성벽을 확장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기념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라나는 ‘살아있는 건축물’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 집념은 2022년 지역사회에서도 인정받았다. 거제시는 백순삼 씨를 ‘거제를 빛낸 인물’로 선정하며, 개인의 땀이 지역의 자산으로 승화된 순간을 기록했다.
2025년 여름 조명 설치 이후 매미성은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일몰 직후부터 켜지는 조명은 성벽의 굴곡을 따라 흐르며 마치 한 편의 중세 판타지 속 풍경을 연출한다. 관광객들은 해가 지기 전 찾아 낮과 밤의 대비를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다.

거제의 푸른 바다와 맞닿은 이 성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자연의 재난을 극복한 인간 의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미성은 개인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료가 없다. 인근 공영주차장도 무료로 개방돼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부산 하단역에서 출발하는 2000번 버스를 타면 환승 없이 복항마을까지 닿을 수 있어 대중교통 이용객에게도 편리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완전히 어두워진 시간보다 초저녁 무렵 방문해 낮과 밤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 좋다. 은은히 켜진 불빛 속에서 성을 걸어보면, 2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스며든 돌벽이 전하는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