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가을이 오면 도시 전체가 고요한 금빛으로 변한다. 돌담길 위로 은행잎이 쌓이고, 오래된 정자와 고목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천 년의 세월을 품은 도시답게 깊고 단단하다.
그중에서도 ‘유연정(流演亭)’은 가을의 경주를 가장 고요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경주 강동면 사라길 어귀, 깊은 고요 속에 자리 잡은 유연정은 조선 순조 11년(1811년) 안동 권씨 문중이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운곡서원 바로 옆 경치 좋은 계곡 위의 용추대 위에 정자를 배치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고즈넉한 풍경을 자랑한다.
물 위에 지어진 정자, 유연정

유연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한옥 정자로 건축되어 있다. 지붕의 하부 구조, 대청 천장에는 우물반자 기법 등이 활용되어 있어 1800년대 초기 건축 수법을 엿볼 수 있는 예로 평가된다.
정자는 운곡서원에서 계곡 쪽으로 약 50m 떨어진 용추대 위에 세워져 있어, 주변 계곡과 산, 물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광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공간에서는 정자와 자연이 서로 손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든다.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면 물소리와 나뭇잎 흔들림이 귓가에 닿고, 정자 기둥이 연못과 하늘에 겹쳐지는 장면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360살 은행나무, 유연정을 품은 노란 거목

정자 바로 옆에는 경북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360년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이 나무는 그 세월만큼이나 웅장하고 장중한 자태로 정자와 함께 이 공간의 중심이 된다.
가을이 깊어지면 이 은행나무는 황금빛 잎을 가득 달고, 바람 한 줄 스치면 수천 장의 은행잎이 흩날려 주변을 노란 융단처럼 물들인다. 10월 하순부터 11월 초까지 절정에 달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를 놓치지 말라고 추천한다.
낙엽이 쌓인 땅 위를 걸을 때면 발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계절을 전한다. 가을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시간대에 유연정을 찾아보자.
유연정은 연중무휴로 무료 개방되며, 방문하기 위한 별도의 예약이나 입장 수수료는 없다. 자가용으로 이동할 경우 인근에 마련된 주차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유연정
주소:경북 경주시 강동면 사라길 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