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용태영 기자) 가을 경주의 첨성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분홍빛 억새 군락은 한순간에 관광객을 이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경주 동부사적지대 핑크뮬리 군락지’로,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일원에 자리한다. 국보 첨성대와 계림, 월성 등 신라의 핵심 유적을 끼고 있어 ‘역사와 감각의 실험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자 신라인들의 과학 정신을 증명하는 국보다. 그 발치에 들어선 핑크뮬리는 자연 군락이 아닌 8만 본을 인위적으로 심어 만든 기획 경관이다. 전통과 현대, 무거움과 가벼움이 한 화면에 공존하며 다른 지역의 억새밭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부사적지대는 연중무휴, 24시간 무료로 개방된다. 대릉원, 동궁과 월지 등 인근의 유료 유적지와 달리 누구나 부담 없이 계절의 정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탁월하다. 실제로 많은 여행객들이 경주 여행의 필수 코스로 이곳을 선택한다.

인근 대릉원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도보 5~10분 안에 군락지에 닿을 수 있다. 주차 요금은 최초 2시간 2,000원, 이후 10분당 200원이 추가되는 수준이라 장시간 머물러도 부담이 적다.
핑크뮬리의 절정기는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중순 사이로 꼽힌다. 특히 늦은 오후,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내려앉을 때 풍경은 극대화된다. 한쪽에서는 국보의 석조 건축이 실루엣을 드리우고, 다른 쪽에서는 바람 따라 흔들리는 분홍빛 억새가 파도처럼 번지며 몽환적인 장면을 만든다.
아침 시간대 역시 놓치기 어렵다. 관광객이 적어 조용히 거닐 수 있고, 이슬 머금은 억새빛이 부드럽게 번지며 한층 깊은 정취를 더한다.
경주의 핑크뮬리는 단순한 유행 식물이 아니다. 201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확산된 ‘핑크뮬리 열풍’을 가장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착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역 정체성과 맞물리며 해마다 반복되는 명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방문 전,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풍이 불면 억새가 눕거나 부서져 기대만큼의 장관을 보기 어렵다. 가을비가 내린 직후라면 분홍빛의 선명도가 한층 높아진다는 후기도 많다.